게시물 번호    6 - 1 작 성 일    2006-04-28  19:45:06
글 쓴 이    윤동혁 Homepage    

조회 : 2243 내 친구, BASHI에 대한 기억 Ⅰ 수정하기 삭제하기
내 친구, BASHI에 대한 기억 Ⅰ

어젯밤 잠자리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혹시 경험해 보셨나요? 잠자리에서 지금은 이세상에 없는 사람이 현실인 듯 꿈인 듯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제 홈페이지에 BASHI에 대한 글을 올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선 BASHI에 대한 소개를 해야겠네요.
BASHI는 일본의 알파인 프로 스노우보더였습니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스노우보더였지요.
알파인 장비로 무엇이든 가능한 라이더였습니다. 프리라이딩, 레이싱, 모글, 에어, 트릭, 파우더, 익스트림 스노우보딩까지.
BASHI는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아는 최고의 스노우보더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볼까요?
사실 단순한 턴을 하는 프리라이딩이나 레이싱은 그리 멋있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외모도 165센티 정도의 키에 몸무게도 50킬로 중반 정도밖에 안되기도 하거니와 예쁜 스타일의 라이딩을 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프리라이딩에는 다른 어떤 라이더에게서도 보지 못하는 경쾌함과 보는 사람을 뜨끔하게 할 만큼의 의외성이 있지요.
예를 들면 숏턴을 가볍게 하고 내려오다가 갑자기 T-바(외국 스키장에 많이 있는 설면에 보드를 대고 올라가는 2인승 리프트 같은 것 입니다.) 사이로 불쑥 들어가서 사람들 사이를 게이트 타듯 내려오다가 코스로 돌아오는 둔 턱에서는 그립을 성공시키는 깔끔한 에어를 보여주고 완벽한 비텔리 턴으로 마무리를 하지요. 그래서 비디오나 TV촬영에서는 카메라맨들이 항상 애를 먹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평범한 턴만을 요구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의외의 행동과 거기에서 나오는 경쾌성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지요.

BASHI는 모글의 천재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키 모글, 그대로 모글을 탔으니까요.
요즘도 가끔 모글을 타는 스노우보더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더 많은 스노우보더들이 모글을 즐겼었죠. 초창기에는 모글 대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두들 스키 모글 특유의 경쾌함과 스피드는 없이 답답하게 모글을 넘어 지나가는 식의 라이딩을 합니다.
위에서 말한데로 BASHI는 스키 모글처럼 봉우리를 통통 통통……내려옵니다. 그것도 30도 이상의 경사면의 모글을 엄청난 스피드로 말이죠.
BASHI의 모글 라이딩은 전문 스키 모글러들도 인정하는 수준이었습니다.

BASHI에게 에어는 기본이었습니다.
프리라이딩 중에도 둔 턱이나 경사면 변화가 있으면 당연히 뛰었고 프리스타일러들이 뛰는 빅 킥커에서도 720까지 성공했답니다. 그 당시가 아마도 1998년도로 기억하네요. 그 시절에는 웬만한 프리스타일러들도 720는 어려운 기술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그가 뛰면 꽤나 뛴다는 프리스타일러들이 박수 치며 구경했으니까요.
제가 BASHI에게 처음 반한 것도 한 잡지에 실린 뒤쪽 다리를 완벽하게 펴고 ‘노즈 그립’을 한 에어 사진이었는데 아무리 유심히 봐도 하드 부츠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포지션이었죠. 그에게 물어봤더니 그 시절의 장비로는 가능했다고 하네요. 그에게만 말이죠.. ^^

트릭이라……BASHI는 너무도 당연히 페이키를 했습니다. 레귤러였는데 가볍게 페이키를 하고 내려가면 조금 과장해서 진짜 구피같았답니다.
한번은 BASHI가 트레이닝하고 겨울을 지내는 일본의 한 스키장에서 트레이닝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슬픈 사건이 일어났던 해였는데…… 어쨌든, 그 스키장은 NIIGATA라는 현에 위치해서 겨울에 조금은 습하고 무거운 눈이 정말 많이 내립니다. 그 때도 적설량이 한 2미터는 되었던 것 같네요.
슬로프는 너무 부드러워서 게이트 트레이닝 하기에는 부적절했는데 그래도 전 몇몇 스노우보더들과 열심히 게이트 트레이닝을 했죠. 오후가 되자 코스에 홈이 마치 모글 코스처럼 보일 정도로 많이 파였답니다. 라이딩을 하면 자연스럽게 손이 눈에 닿을 정도였죠.
그 때쯤 BASHI가 잠에서 막 깬듯한 얼굴로 슬로프에 나타나서는 아직도 연습하느냐며 한번 타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기대에 차서 보고 있었죠.
그런데……BASHI는 스타트하더니 갑자기 페이키를 해서 게이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너무도 편하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20 게이트를 완주하고 내려왔답니다.
우리는 못 볼 것을 본 사람들처럼 멍하니 굳어버렸죠.
완전히 의기소침해져서 숙소에 들어가버린 사람도 있었답니다. (일본 사람들이 좀 그런 면이 있더라고요. ^^)

BASHI는 항상 짧은 보드를 사용하는 라이더였습니다.
GS시합이나 트레이닝 외에는 모든 라이딩을 짧은 보드를 가지고 했죠.
그는 파우더도 짧은 보드를 가지고 했답니다.
일반적으로는 긴 보드를 가지고 파우더에 들어가지만 그는 짧은 보드를 가지고 마치 긴 보드인양 파우더 안에서도 큰 액션을 취했답니다.
아무래도 파우더 안에서도 뛸 곳이 있으면 에어를 구사해야 했나 봅니다.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익스트림 스노우보드 비디오를 보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거나 눈사태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했지요. 부력이 많이 받쳐주는 프리스타일 보드로도 힘든 일인데 알파인 보드로 잘도 뛰어내리고 잘도 눈사태 위를 타고 내려왔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항상 불안한 탄성을 지어냈지만 말이죠.
그러고도 한번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희한한 일입니다.
내가 한번은 물어봤었죠. 그렇게 타는데 다친 적은 없느냐고. 대답은 게이트 타면서 손가락 다쳐본 적은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도록 BASHI는 천재적인 스노우보더였습니다.
특히 알파인을 즐기시는 일반인분들은 원심력을 이용해 엣지로만 타는 것이 알파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 것 같은데( 혹시, 이론은 그렇지 않아도 제가 보기에 라이딩하시는 느낌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를 보면 역시 알파인 스노우보딩도 밸런스구나……하는 생각을 새삼 해 봅니다.

앞으로 스노우보드가 점점 더 전문화되어 가면서 알파인 선수는 게이트만……프리스타일러들은 자유로운 듯 고립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스노우보더들이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BASHI같은 독특한 천재 라이더를 직접 다시한번 볼 수 있는 영광이 또 올까요?

나와 스타일은 너무도 다르지만 ‘내 속의 스노우보드’를 무궁하게 만들어준 천재 스노우보더, ISHIBASHI YUJI가 그리워집니다.
전 진정한 스노우보더가 아닌 한낮 알파인 레이서에 불과하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나는 항상 진정한 스노우보더를 꿈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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